경영자의 심한 리더십에 대한 생각 직딩일기

회사의 전략적 방향을 수립하고 이의 실행을 가능하도록 하는 어렵고도 가슴 떨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 고 생각했는데, PJT 1년을 솔랑솔랑 채워가는 요즘, 자꾸만 드는 생각은 내가 회사를 앞으로 가는 것에 기여하고 있는지 혹은 뒤로 가는 것에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두려움이다. 경영자가 자신의 Needs와 철학과 방향성을 의심없는 확고함으로 밀어붙이는 가운데 애꿎은 서류만 수백장씩 생겨나고 있다. 그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에 기가 눌린 임원, 팀장들은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Yes만을 남발해가며 경영자의 입만 바라보다가 그 입에서 한 두마디가 뱉어지면 성경이 되어 간부들에게 전파되고 가슴에 새겨진다.

조직 전략의 초기 Setting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Noise라고 여기기엔, 기하급수적으로 진화하는 경영자의 이 끔찍하게 폐쇄적인 욕망과 지나친 꼼꼼함이 자꾸만 배를 산으로 몰고만 갈 것 같아서, 일개 사공에 불과한 나 역시, 그저 눈치만 보며 그 펄럭이는 옷자락을 방향타 삼아 노를 저어야 하기에, 일하는 마음이 좋지 않다.

요즘 들어 부쩍 뭔가 잘못되고 있는 꿈을 많이 꾸는 것도 같은 이유일련지. 어젯밤에도, 대학교 시절로 돌아간 교생 실습 대표 수업 자리에서 잘못 작성된 교안으로 수업을 진행하다가 황급히 놀라거나 수업할 페이지를 찾지 못해 쩔쩔 매는 꿈을 꾸었다. 옆에 삐딱하게 서서 가면을 쓰고 바라보던 담임 교사의 차가운 시선도 생생할 만큼…

화려한 음률로 늘상 용비어천가를 불러재끼고 있는 경영자 측근의 임원들도, 어쩌면 속으로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나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이 리더십에, 진심으로 동조하고 있는 건, 설마 아니겠지.


좋은 인재 구하기 직딩일기

내가 인사업무를 담당하던 꿈같던 시절, 소위 '좋은 spec'의 사람을 모셔오기 위하여 여기저기 암암리 수소문하고 고민하고 했던 적이 있었다. 경영진의 불타는 의지와 갑작스러운 회사의 성장세와 맞물려 오로지 '인재만이 살길이다'는 기치하에 좋은 spec을 찾아 헤맸고, 막상 찾다보면 주머니에 가진 돈이 넉넉치 않아 있던 있던 우리 식구들 먹일 밥값, 반찬값까지 털어 '그 분'의 '차비'에 보탰던 것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기름진 쌀밥에 고기 반찬 올리느라 그렇게 있던 식구들 피눈물 빼가면서까지 모셔온 '그 분'들이 어땠느냐를 돌이켜보면, 80% 가량은 'spec은 spec일 뿐'이었고, 오히려 '입'만 가지고 '손발'은 전혀 Align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잡음만 일으키다 제 풀에 지쳐 떠나거나, 아니면 주변 사람들을 떠나게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도 '내 회사에 아무나 발들이게 할 수 없다'는 경영자는 끊임없이 '고spec'만을 외쳐대고, spec으로 무장한 '그 분'들은 벌써 회사의 많은 부분을 점령해버렸다.

오늘도 국내 굴지 대기업 출신의 혁혁한 경력, 국내 제일 국립대 박사학위 소유자인 '그 분' 중의 '그 분'을 팀장으로 모시고 있는 차장님의 한숨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깊이 너머온다. '그 분'이 있던 식구들보다 높은 연봉에, 며느리도 모를 signing bonus까지 엄청나게 챙겨가며 경력직으로 우리 회사에 건너온 지 벌써 1년을 채워가는데, 기본 멘트는 '내가 아직 사업을 잘 몰라서'란다. 그러면서도 어찌나 고집이나 자존심, 교과서 같은 멘트에는 강하신지. 팀장이 있음에도 팀장 업무까지 챙겨가며, 팀원들을 챙겨가며 팀원 노릇을 해야 하는 차상위 중간 관리자인 차장님은 참 회사가 재미없단다. 가끔씩 한탄조로 내뱉는 말씀이 '저런 사람 어떻게(사실은 왜!!! 도대체 왜!!!) 데려왔느냐'이다.

다행히, 그 팀장님은 내가 팀을 옮기고 난 후 들어오신 분이니 내가 데려온 사람은 아니지만, 누가봐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좋은 spec의 영입에는 대부분 사정이 있다. 단순히, 연봉을 전 직장보다 수천 가량 올려준대서 이직을 결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뭔가 전 직장에 대한 로얄티에 틈새가 있고, 특히나 팀장급의 경우 임원 승진 레벨에서의 중하위권을 공략하면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인생 제2막에 대한 환상과 맘껏 재량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터전 제공에 대한 기대감, 당신이 저희에게 오시면 그것이 곧 우리가 가는 길이 됩니다 라는 식의 유혹은, 소위 사오정 위치에 놓인 간부급들에게 썩 잘 먹히는 방법이다.

그렇게 해서 모셔온 '그 분'들이 부디, 그 밥값을 하시는 분들이어야 할텐데,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았던 것을 돌이켜보면 우리 회사의 경력직 채용 방식에 문제가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직접 면대면하여 면접을 진행하는 임원/경영진의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의심도 든다. 사람이 반이라는데, 아니 전부라는데, 진정한 'right people'을 모셔오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내가 주일에 교회를 가는 이유

세 가지 정도를 찾는다면, 하나는 주일에 교회 안나가는 사람은 이상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기시는 시부모님들과 변변찮은 남편과 자식 덕에 오로지 교회를 통해서만 행복을 찾고 계시는 울옴마 등을 감안하여 절반쯤은 가정평화를 위해서고, 나머지 절반의 절반쯤은 내 마음의 안식과 평화, 그리고, 별로 굵진 않지만 나름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대한 다스림과 관리를 위해서고, 마지막 세번째 나머지는 유아실에서 수달에게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를 주는 동시에 옆에서 꼬물락거리는 이쁜 애기들을 보고자 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아, 예전에 한국 교회의 역사라는 새문안교회를 다녔던 때나 가끔 엄마따라 들렀던 여의도순뽂음주식회사교회를 갈 적이면, 찬양대의 아름다운 하모니와 성악전공자들이 선사하는 라이브 특송의 호사를 즐기는 것도 커다란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잠시의 공백이 있었긴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러저러한 이유로 주일마다 교회를 간다. 하지만, 교회를 다녀오는 기분은 늘, 별로 좋은 편은 아니다. 매 기도 시간마다 되풀이 되는 '아버지, 저 악한 북의 위정자들이 진심으로 뉘우치게 해주시고, 저 불쌍한 북한의 백성들을 구해주소서'라는 후렴 문구를 들을 적이면 매주 한 번도 빠짐없이 듣는데도 마음에서 욱하는 감정이 솟구친다. 나도, 저들도 북한에 대해 모르는 것은 똑 같은 상황이고, 북한에만 악한 위정자들이 판치는 것도 아니고, 한 종교에서 특정 국가에 대하여 절대적인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어 매주, 매시간마다 예배를 빙자하여 신자들을 세뇌시킨다는 것은 정말 부당한 일이다. 그것도 온 교회가 합심하여 같은 내용의 문구를 매 시간마다 되풀이한다는 건 어떤 음모가 있지 않을까 생각될 만큼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지난 주, 설교 시간엔 민노당 강기갑 의원의 무죄처리와 MBC 피디수첩의 무혐의 판결이 부당하다는 식의 설교가 이어졌다. 순간, 목사님이 대한어버이회 소속인가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들만큼 강경하고 확실한 어조. 하나님의 뜻으로 그들을 반드시 단죄처리해야 한다는 듯한 일장 연설이 이어지고, '아멘'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독실한 성도들.. 교회를 참 밥맛 떨어지게 만드는 풍경들이다. 특정 신앙을 따르고자 한다면 특정의 정치 견해까지 따라야 한다는 그들의 뻔뻔한 요구가 참으로 역겹다.

그래도, 나는 오로지 내 가족의 평안과 안녕을 위하여, 일신의 안식을 위하여 계속 주일에 교회를 나가야할까.
악마의 대가리처럼 요즘들어 또 불쑥불쑥 고개를 치미는 물음표이다.


 


 


 


 


 


 


딱한 인간들 직딩일기

현재 시각, 새벽 4시 30분 경

어제 출근하여 아직도 회사에 있는 나도 참 거식한 인간이지만, 옆자리에 앉아있는 두어명의 인간들과,
저쪽에서 계속 화장실 들락거리며 지들끼리 뭔가 열심히 논의하고 있는 아저씨들까지 상상외로 회사에 있는 인간들이 많다.

그래도 뭐가 좋다고 키득거리며 농담따먹기를 즐기며 밝아오는 아침을 온통 추레한 모습으로 맞이하고 있다.

모두들, 그저 딱한 인간들이다.
쩝..

아기에서 어린이로 수달이야기

다른 아이들이 손가락 2개로 V자를 멋지게 만들어 사진을 찍을 때, 수달은 어김없이 손가락 네 개를 펼쳐들곤 한다. 네 살이라는 뜻이다, 딴에는.
작년에는 카메라를 의식하고 포즈를 취하며 사진찍을만한 내공은 없었으니 이런 버릇이 생긴 것도 올해의 일이다.

내년에는 다섯살이 된다고, 몇 일 안남았다 일러주었더니 녀석은 왠지 우쭐해하는 눈치다. 이제 사진을 찍을 때 저 단풍잎 같은 손가락 다섯개를 전부 펼쳐들고 사진을 찍을련지..

동생의 존재를 알게 된 후부터인지, 괜한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언젠가부터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 듯 엄마를 무척이나 탐한다. 옷도 엄마가 입혀줘야 하고, 무언가를 집어 오는 것도, 하다못해 전용 쉬야컵을 들고와서 바지를 내리는 일 마저도 엄마가 아니면 안된다. 원래부터 자주 본인이 원하는 대로 '담당자'를 지정해 놓고 다른 사람이 하면 들입다 울고 떼쓰기를 일삼던 녀석이기에 편히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계시던 할아버지가 불려온다던지 하는 일은 있었지만, 이렇게 오직 '엄마'한 사람만을 파고드는 건 전례에 없던 일이다.

자다가도 한번씩 깨어 엄마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이따금 순전히 제 고약한 잠버릇 탓에 엄마 발 밑 언저리까지 굴러가 자다가는 엄마가 없다고 갑자기 온 집안을 깨우며 서럽게 흐느끼기도 한다. 잠자리에 누울 무렵이면 태중에서 신나게 일과를 시작하는 작은 아들 녀석 덕분에 잠을 설친 7개월 임산부 엄마가 새벽녁이 다 되어서야 잠들었던 말던 간에, 녀석은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발 밑까지 굴러갔다가, "엄마!"하는 울음 섞인 외침과 함께 아침을 깨웠다.

그새 그 동그란 눈망울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다 "엄마 여기있네" 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뽈뽈 기어서 품안으로 쏙 들어온다.
정말 녀석이 동생 시샘을 하는 것일까. 내겐 이제 무려 다섯살이나 되어가는, 아기보다는 어린이가 훨씬 가까운 이 녀석이 아직도 한없이 아기같은데 말이다.

황금같은 3일의 연휴가 생겼건만 프로젝트 마무리 시점이라, 오늘도 내일도 녀석과의 시간을 맘껏 가질 만한 여유가 없어 미안하다. 호떡도 만들어줘야 하고, 그 좋아하는 뽀로로로 같이 봐줘야 하고, 보는 책만 또보고 또보곤 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바꿔가며 무릎에 앉혀놓고 책이라도 읽어줘야 하는데, 늘 미안한 마음이다.
한 살 더 고, 또 한 살 더 먹고 좀 더 아기에서 어린이가 되면 일하는 엄마의 늘 짠한 이 마음을 이해해줄 날이 올까, 녀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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