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의 영향 수달이야기

엄마가 한창 알천랑에 눈뒤집혀 졸린 눈 흡뜨며 선덕여왕을 보던 시절에는 늘상 "돌격하라!!"를 입에 달고 살던 녀석이, 미실 사망(?) 후 아이리스로 갈아타면서는 장난감 블럭 두어개를 연결하여 총이랍시고 들고 뛰어다니면서 "죽여버리겠다"를 외친다. 돌연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지 엄마아빠를 향해 "이수달 요원, 정신차려! 해야지" 하며 짜증을 내는 것도 참 어이없다만, 사방을 살피며 바삐 뛰어다니는 모습이, 제법 아기 NSS 요원스러운 면도 없잖아 있는 것 같다.

옛날 옛적~ 비디오 시청할 때마다 나오던 바로 그,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던 대중매체의 해악이 바로 우리 아들에게서 여실히 보여지고 있다. 노트북을 무릎에 놓고 끄적이고 있는 엄마를 향해 지금 이 순간에도 매서운 눈초리로 옆걸음으로 다가와서는 목에 총을 겨누다가 사라진다.

TV드라마는 물론, 현실 속 라이브 뉴스도 드라마와 별 다를 바 없는 세상이니, 세상을 만들어가는 어른들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를 실감하는 요즘이다.

근 석달 가까이 일주일 평균 3일씩을 출장으로 보내곤 했었는데, 이제 다음 주 정도면 이 짓도 좀 마무리가 될 것 같다. 이제 내 사랑스러운 아들 수달군을 품에 꼭 껴안고 잠들며 국가 안보와 핵테러 방지를 위해 늘상 바삐 뛰어다녔을 녀석의 몸과 마음을 좀 따뜻하게 감싸줘야겠다.


그저 움직이는 팔다리를 지닌 자궁에 불과한… 주절주절

다시, 임신부라는 움직이는 거대한 자궁의 역할을 수행하며, 나는 끊임없이 배가 고프고, 이 고픔을 채워줄 수 있는 뭔가를 찾아 골몰하고 헤매이는 일에 많은 정신력을 소비한다.
현재 시간 아직 7시도 되지 않은 저녁, 이미 빵 한 조각을 얻어먹었음에도 너무 배가 고프다. 아직 내 안의 생명은 고작 5g 밖에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왠지 자괴감이 느껴진다. OTL....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수달이야기

갑자기 일이 생겨 시부모님께서 시골로 내려가셨다. 하여, 오늘은 6시 30분, 규정상의 퇴근 시간이 땡! 하자마자 어린이집에 수달을 데리러 가야 한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언질은 해놓았지만, 매일 4시면 데리러오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늦도록 오지 않아 혹 문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 전활 해봤는데, 왠걸 엄마의 기대(?)와는 달리 수달은 친구들과 장난감 기차를 만들며 신나게 놀고 있단다.

집에서는 지 손으로 밥 한 숟갈 제대로 안 떠먹으려 하고, 지 배 채우는 일에도 조금만 더 먹자 매달리는 엄마에 씨익 선심쓰듯 밥 한 숟갈씩 넘겨주던 녀석이 어린이집에 가면 딴판이랜다. 어린이집에 들고 나설 때 제 물건은 스스로 악착같이도 챙기고, 혼자서 밥 한 그릇도 뚝딱 먹어치우고, 혼자서 화장실도 흔적없이 다녀오고, 나오는 간식도 낼름낼름 잘 먹어치운단다.

그 잠깐 사이를 참지 못해 수달의 안부를 걱정스레 물었던 엄마가 오히려 무심해보여 살짝 무안함까지 밀려오는 순간이다.

늘상 아기로만 보였고, 아직, 그리고 앞으로도 내게 아기일 것만 같은 녀석도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쑥쑥 자라나고 있었나보다.
품안에 자식이라더니, 봄비 한 번 오갈 때마다 연녹빛 푸르름과 함께 쑥쑥 자라나는 나무들처럼, 오뉴월 하룻볕이 다르다고 통통히 뱃살 키워가는 알곡처럼, 눈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스스로 자라났었나 보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라는 글귀를 어디에선가 보았던 것도 같지만, 보고 잊어버리던 때엔 아직 이 느낌을 알지 못했었는데, 이 느낌으로 다시 그 말을 떠올리니 크게 공감이 간다.

스스로 자라나는 수달에게, 부모로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만큼의 도움이 되어야 할텐데, 욕심만 앞서 걱정이다. 분명 육아에 대한 나의 지론은 베타맘인데 말이다.


질긴 악연과의 결별을 앞두고 주절주절

그 질긴 악연이 시작된 것이 2004년이었던 것 같다.

고만고만한 돈으로 원룸 한 칸을 얻으러 다니던 2월,
꽃샘추위였던지 바람은 너무 추웠고, 옷깃을 아무리 여며도 자꾸만 살갖으로 파고 들어 그 당시 남자친구였던 신랑과 언 손을 호호 불며 부동산 아줌마를 따라다녔다.

돈이 고만고만하니 들여다보는 집 또한 고만고만한 방 한 칸.
두어칸짜리 작은 씽크대가 있고, 작은 화장실이 있고, 그만큼 또 작은 창문이 있고, 그 안에 요행 침대와 TV , 냉장고 등이 이른바 '풀옵션'으로 따라붙었던.

벌집처럼 생긴, 5층 건물에 원룸이 수십여채가 딸려 있는 그 건물은, 한 눈에 봐도 집장사치의 냄새가 확 났지만, 결정적으로 그 추웠던 날, 둘러보았던 집 중에서 가장 따뜻했다. 중앙난방에 관리비는 무조건 월 3만원, 전기/난방 포함. 그 따뜻함에 비해 저렴하게 느껴졌던 전세금, 그리고, 자기 집에 대한 애정과 의욕이 강해 보였던, 모든 집 수리를 스스로 돌본다며 작업복을 입고 나타난 수염이 가득했던 중년의 집주인, 그렇게 그 집과의 악연이 시작되었다. 
 

반년 정도 넘어서였을까. 재주는 부족한 사람이 욕심은 많았던 탓인지 주인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그렇게 건물이 많다고 자랑하던 주인의 재산은 순식간에 모두 가압류가 되었고, 겹경매에 겹가압류에 수백명의 고만고만한 세입자들이 얽히고 얽혀, 벌써 4년 가까이 끌어왔다. 
 

가끔은 벌컥 울화통이 치솟기도 했다가, 눈물이 나기도 했다가, 그 돈이면 뭘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보기도 하다가, 세월이 약이라고 조금씩 무뎌졌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는 그 돈 없어도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 없다며 스스로를 달래는 경지에 이르기도 했다. 살아가며 또 그만큼 득 볼 날도 있을테지 제법 통크게 마음 먹어보기도 했던 것 같다. 
 

이제 내일, 모레 딱 이틀후면 그 집과의 관계가 끝난다.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또 한 번 울컥할 수도 있지만, 그저 그 인연을 끝냄에 감사한다.
그동안 맘졸여온 신랑과 서로 격려하며. 나름 많이 배울 수 있었다는 씁쓸한 위안을 둘러대며 자족해 본다.
대한민국에서 세입자라는 존재의 위치와, 알고 싶지 않았던 낯선 법률 지식들, 부디 이제는 쓸 일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직딩임산부 푸념.. 남성들 수만큼 여성들이 일하는 직장을 꿈꾸며 직딩일기

어떤 단어를 떠올렸을 때 그 단어와 동반되어 떠오르는 주변의 심상들이 있는데, '임신'이라는 단어와 함께 내게 떠오르는 공간 중의 하나는 바로 화장실이다.

자도자도 풀리지 않는 나른함과 피로를 풀기 위해 구겨진 채로 토막잠을 청했던 기억이라든지, 옆 자리 동료의 스킨 냄새가 역겨워 뛰쳐나와 뒤틀린 속 달래며 바라보던 화장실 유리창 바깥의 먼 풍경이라던지, 어떤 자세를 해야 좀 덜 불편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던 기억 등이 그것이다.

그럴 때면 딱 이 화장실 한 칸 크기만한 작은 휴게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간절히 했던 것 같다. 누워서까지는 언감생심 꿈꾸지 않으니, 그저 앉아서라도 잠시나마 눈 붙일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곳 말이다. 구글이나 NHN같은 회사였다면 이를 기대할 수 있었을까. 여성 직원의 비중이 높다는 항공사나 은행에는 그런 시설이 있다는 말도 들었던 것 같다. 
 

입사할 당시 100명중 거의 한 명 꼴이던 여직원의 수가 늘어나고, 제법 단순 서무보조가 아닌 대졸 사원급으로도 많은 수의 여직원들이 동등한 조건으로 근무하게 되었건만 아직 갈 길은 멀었나보다. 대부분의 팀이 남자 직원 10명 이상에 여자 직원 많아야 한 두명인데도 남초라는 말을 하지 않는데, 여직원 수가 4,5명 정도인 어느 팀은 '여초'라서 더 이상 경력직으로 여직원은 받지 않겠다 선언하는 것을 봐도 그렇고, 여전히 남자들 중심의 '까라면 까라'식의 군대문화는 일상에 독초처럼 깊이 박혀 있다. 회식은 죽어라 술 마시는 거고, 그 회식에 감히 술을 마시지 않으려 드는 것은 조직의 단합을 저해하는 행위이며, 술은 꼭 이 사람 저 사람 돌려먹어야 우정이 싹트고 의리가 싹튼단다.

부디, 윗 직급에 여성들이 하루 빨리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듯 조금씩 조금씩 이 마초 문화를 중화시킬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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